그루터기

밀인지 가라지인지 열매를 맺기 전, 누구도 모른다.

유연성의 결핍, 주도적인 생각은 자아도취에 빠져 자기 확신이란 오판을.

 

한동안 쉬다 냉담을 푼 후배가 있다.

어느 날 후배는 레지오 00팀에 들어가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온다. 내 생각에 그 팀은 왠지 권위적일 것 같았다. 또 주당파 모임이란 소문도 있다. 소심한 후배가 융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신앙생활에 상처나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왜 하필이면 그 팀이야! 잘 알아봐.” 쌍 손들어 환영하지 못했지만, 딱히 대안도 주지 못했다.

 

몇 개월 후, 레지오 띠를 두르고 미사 안내하는 후배를 성당 입구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근황을 물었다. “그 팀에 들어갔어? 어때?”

후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 지며 이렇게 대답한다. “ 선배들이 친절하게 잘 가르쳐줘서 많이 배우고 너무 좋아요.” 옆에 있던 동료 단원이 거든다. “이 친구 우리 팀에 합류한 후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졌어요. 정말 짱입니다. 하하.” 한 눈으로 봐도 유유상종으로 좋아 보였다. 참 다행이다.

 

축하 악수를 하고 내 갈 길로 돌아서는데, 왠지 돌아서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발걸음을 재촉해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나고 싶어졌다. “왜 하필이면 그 팀이야!. 라고 했던 말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 고정관념에 의한 선입견이 작동했다는 방증이다.

내 신앙은 가끔 아니 자꾸, 이런 자아도취에 빠져 자기 확신이란 오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아도취에 빠지면 주도적인 생각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수렴하기 힘들어한다. 나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의 색으로 상대를 보는 한계에 봉착해 타인을 종종 나쁜 쪽으로 왜곡시켜 결국, 편견이나 차별과 같은 다른 불관용을 낳기도 한다.

 

내가 가라지를 뽑아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 예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 30) 밀인지 가라지인지 열매를 맺기 전까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밀알인지 가라지인지